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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 vs 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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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tablealign=right><bgcolor=#131230><color=#ffffff> '''발생 일시''' [br] (현지시간) || 1997년 4월 12일 토요일 오후 9시 47분 ||
1111||<bgcolor=#131230><color=#ffffff> '''사건 종료''' [br] (현지시간) || 1997년 4월 14일 오전 7시 20분[* 구조 작업 종료 및 마지막 시신 수습 시각.] ||
12||<bgcolor=#131230><color=#ffffff> '''발생 장소''' || [[유고랜드]] 시디벨아베스 영랑구 영랑호텔[br]{{{-2 [include(틀:국기, 국명=유고랜드)]}}} ||
12||<bgcolor=#131230><color=#ffffff> '''발생 장소''' || [[유고랜드]] 시디벨 카쉬 영랑호텔[* 현 힐튼 영랑, 시디벨아베스 카쉬 팔판통로 6(영랑지구, 1407)][br]{{{-2 [include(틀:국기, 국명=유고랜드)]}}} ||
1313||<bgcolor=#131230><color=#ffffff> '''사고 유형''' || [[테러]][* 내부자의 협조를 받은 차량 폭탄 공격.] ||
1414||<bgcolor=#131230><color=#ffffff> '''발생 주체''' || [[알자미아]][* 알자미아는 공식적으로 책임을 주장하지 않았다. 1997년 5월 루이나 정부는 국가정보국 평가를 근거로 알자미아를 배후로 지목하고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
1515||<bgcolor=#131230><color=#ffffff> '''범인''' || 칼리드 무사 알사누시 (주모자, 도주)[br]실행·지원 인원 7명[* 3명 사형, 2명 무기징역, 1명 도주, 1명 군정보국 구금 중 탈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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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0==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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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영랑호텔 폭탄 테러는 1997년 4월 12일 오후 9시 47분 [[유고랜드]]의 수도 시디벨아베스 영랑구에 있는 영랑호텔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다. 국제 지하드 조직 [[알자미아]]의 지시를 받은 실행조가 포섭한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폭약을 실은 화물차를 호텔 지하 납품장에 들여보냈고, 폭발로 호텔 동관 일부가 무너져 41명이 숨지고 213명이 다쳤다.
32영랑호텔 폭탄 테러는 1997년 4월 12일 오후 9시 47분 [[유고랜드]] 시디벨에 있는 영랑호텔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다. 국제 지하드 조직 [[알자미아]]의 지시를 받은 실행조가 포섭한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폭약을 실은 화물차를 호텔 지하 납품장에 들여보냈고, 폭발로 호텔 동관 일부가 무너져 41명이 숨지고 213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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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4호텔은 1985년부터 주유고랜드 루이나군의 장교와 군무원, [[플라자 그룹]] 계열 경비업체 직원들이 장기 투숙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사망자 41명 가운데 루이나인은 17명이었고, 호텔 직원 15명을 포함한 유고랜드인이 22명으로 더 많았다. 나머지 2명은 투숙 중이던 제3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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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2=== 영랑호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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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영랑호텔은 시디벨아베스 영랑구 동쪽 끝에 있던 8층 건물로, 객실 수는 212실이었다. 1936년 라 마베라령 페잔 시절 총독부 영빈관으로 지어졌고, 1941년 유고랜드 건국 뒤 자리한 구의 이름을 따 영랑호텔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증축을 거쳐 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고급 호텔이 되었다. 서관에는 연회장과 식당이, 동관에는 객실과 주방·세탁실·납품장이 있었으며, 동관 지하 납품장은 호텔 뒤편 골목과 경사로로 이어져 있었다.
44영랑호텔은 시디벨 카쉬 동쪽 끝에 있던 8층 건물로, 객실 수는 212실이었다. 1936년 라 마베라령 페잔 시절 총독부 영빈관으로 지어졌고, 1941년 유고랜드 건국 뒤 지명을 따와 영랑호텔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증축을 거쳐 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고급 호텔이 되었다. 서관에는 연회장과 식당이, 동관에는 객실과 주방·세탁실·납품장이 있었으며, 동관 지하 납품장은 호텔 뒤편 골목과 경사로로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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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61985년 4월 [[루이나-유고랜드 상호방위조약]] 체결과 함께 루이나군이 유고랜드에 전개했을 때, 수도에는 루이나군 연락사령부와 각급 연락 장교들이 머물 숙소가 부족했다. 주유고랜드 루이나군 사령부는 같은 해 영랑호텔과 장기 임대 계약을 맺고 동관 4~7층의 객실 96실을 장교·군무원 숙소로 썼다. 1990년대에는 루이나군 시설 경비를 위탁받은 플라자 시큐리티 서비스의 직원들도 같은 층에 투숙했다. 호텔은 민간 영업을 계속했기 때문에 1~3층과 서관에는 일반 투숙객과 연회 손님이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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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0칼리드 무사 알사누시는 리비아 출신으로, 1986년 사이클론 작전 시기에 외국인 의용병으로 유고랜드에 들어와 세테트의 바이트 알자미아를 거쳐 전선에 배속되었다. 1988년 알자미아 창설 무렵부터 조직의 군사 부문에서 일했고, 1990년대 중반 군사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수사기관은 그가 와디 사크르 사건의 계획에도 관여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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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알사누시는 폭발 사흘 전인 4월 9일 시디벨아베스를 떠나 나크시에 로스탐을 거쳐 고랜드로 넘어갔다. 루이나는 1997년 6월 고랜드를 장악한 탈레반에게 나쉬디와 알사누시의 인도를 요구했으나, 탈레반은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그는 2001년 11월 루이나-고랜드 전쟁 초기 칸다하르 인근의 공습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신은 확인되지 않았다.
92알사누시는 폭발 사흘 전인 4월 9일 시디벨을 떠나 나크시에 로스탐을 거쳐 고랜드로 넘어갔다. 루이나는 1997년 6월 고랜드를 장악한 탈레반에게 나쉬디와 알사누시의 인도를 요구했으나, 탈레반은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그는 2001년 11월 루이나-고랜드 전쟁 초기 칸다하르 인근의 공습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신은 확인되지 않았다.
9393
9494=== 실행·지원 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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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6||<tablealign=center><tablewidth=560><tablebordercolor=#131230><rowbgcolor=#131230><rowcolor=#ffffff> 이름 || 역할 || 결과 ||
97|| 유세프 알하킴 || 시디벨아베스 세포장 || 사형 (1998) ||
97|| 유세프 알하킴 || 시디벨 세포장 || 사형 (1998) ||
9898|| 하산 압델 라만 || 화물차 운전 || 사형 (1998) ||
9999|| 사미르 아지즈 바크리 || 내부자 (호텔 직원) || 사형 (1998) ||
100100|| 와엘 슈크리 || 폭약 조립 || 무기징역 ||
101101|| 오마르 나디 || 은신처 제공 || 무기징역 ||
102102|| 아흐마드 주마 칸 || 폭약 조달 || 군정보국 구금 중 탈주 ||
103103|| 타리크 바크리 || 내부자 포섭 || 고랜드 도주 ||
104104
105세포장 유세프 알하킴은 시디벨아베스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던 유고랜드인으로, 1980년대 후반 무자헤딘 훈련소에서 정비병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운전자 하산 압델 라만은 이집트 출신의 옛 의용병이었다.
105세포장 유세프 알하킴은 시디벨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던 아랍계 유고랜드인으로, 1980년대 후반 무자헤딘 훈련소에서 정비병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운전자 하산 압델 라만은 이집트 출신의 옛 의용병이었다.
106106
107107폭약을 조달한 아흐마드 주마 칸은 사비에트-고랜드 전쟁 때 넘어온 파슈툰 난민 가정 출신으로, 1980년대 후반 군정보국이 관리하던 무자헤딘 보급 창고에서 일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서부 국경지대에 남은 옛 창고의 재고를 빼돌려 무장세력에 팔아 왔고, 영랑호텔에 쓰인 군용 폭약도 그가 넘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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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109=== 내부자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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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텔 직원 사미르 아지즈 바크리는 나크시에 로스탐 출신으로, 1993년부터 영랑호텔에서 일했다. 그는 체포 직후 진술에서 사촌 타리크 바크리의 부탁으로 "루이나 장교들에게 팔 밀주를 실은 차"를 들여보냈을 뿐이며 폭약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111호텔 직원 사미르 아지즈 바크리는 가자우에트 출신으로, 1993년부터 영랑호텔에서 일했다. 그는 체포 직후 진술에서 사촌 타리크 바크리의 부탁으로 "루이나 장교들에게 팔 밀주를 실은 차"를 들여보냈을 뿐이며 폭약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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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113검찰은 바크리가 평소와 달리 토요일 밤 납품을 받아들였고, 폭발 7분 전에 자리를 떠났으며, 받은 돈이 밀주 반입의 대가로는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을 들어 그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반면 바크리를 포섭한 사촌 타리크가 고랜드로 달아나 증언할 수 없었고, 휴식 시간 이탈은 그 시각의 정해진 교대였다는 동료 직원들의 진술도 있었다. 바크리가 몰랐을 가능성은 지금도 유고랜드 인권 단체들이 제기하는 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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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68=== 관할권 다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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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사건 이튿날 루이나는 광역수사국(MIA) 수사관과 법과학 인력 46명을 시디벨아베스로 보냈다. 그러나 유고랜드 정부는 사건이 유고랜드 영토의 민간 호텔에서 일어난 유고랜드 국내 형사 사건이라며 수사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로 일원화하고, 루이나 수사관에게는 '연락 및 자문' 지위만 주었다.
170사건 이튿날 루이나는 광역수사국(MIA) 수사관과 법과학 인력 46명을 시디벨로 보냈다. 그러나 유고랜드 정부는 사건이 유고랜드 영토의 민간 호텔에서 일어난 유고랜드 국내 형사 사건이라며 수사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로 일원화하고, 루이나 수사관에게는 '연락 및 자문' 지위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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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72루이나는 호텔 동관 4~7층이 [[루이나-유고랜드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주둔군이 사용하는 시설로 지정되어 있었던 만큼 루이나도 수사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고랜드는 폭발이 일어난 곳이 지정 시설이 아닌 지하 납품장이며 피의자는 모두 유고랜드 영토 안의 민간인이라고 맞섰다. 결국 광역수사국 수사관들은 용의자를 한 번도 직접 신문하지 못했고, 유고랜드 경찰이 넘겨주는 신문 요약본만 받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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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0유고랜드 정부는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희생자 가운데 유고랜드인이 더 많았다는 사실은 유고랜드 사회에 두 갈래의 반응을 낳았다. 한쪽에서는 외국 테러 조직이 유고랜드 노동자들을 '부수적 피해'로 죽였다는 분노가 일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루이나군이 수도 한복판의 민간 호텔에 머물면서 유고랜드인들을 표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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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보상 문제는 오랫동안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루이나인 희생자의 유족은 군 사망 보상금과 플라자 그룹의 보험금을 받았으나, 호텔 직원을 비롯한 유고랜드인 희생자의 유족은 유고랜드 정부의 소액 위로금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1997년 7월 호텔 직원 유족들이 시디벨아베스의 루이나군 연락사령부 앞에서 농성을 벌였고, 루이나 정부는 1999년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유고랜드인과 제3국인 희생자 24명의 유족에게 1인당 2만 달러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222보상 문제는 오랫동안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루이나인 희생자의 유족은 군 사망 보상금과 플라자 그룹의 보험금을 받았으나, 호텔 직원을 비롯한 유고랜드인 희생자의 유족은 유고랜드 정부의 소액 위로금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1997년 7월 호텔 직원 유족들이 시디벨의 루이나군 연락사령부 앞에서 농성을 벌였고, 루이나 정부는 1999년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유고랜드인과 제3국인 희생자 24명의 유족에게 1인당 2만 달러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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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224=== 알자미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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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알자미아는 공격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나쉬디는 1997년 8월 고랜드에서 걸프 지역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랑과 와디 사크르의 젊은이들은 의무를 다했다"며 공격을 칭송하면서도 자신이 지시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1998년 2월 나쉬디와 알자와히리가 발표한 「전선 선언」은 두 사건을 루이나군에 대한 공격의 모범으로 거론했다.
226알자미아는 공격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나쉬디는 1997년 8월 고랜드에서 걸프 지역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카쉬와 와디 사크르의 젊은이들은 의무를 다했다"며 공격을 칭송하면서도 자신이 지시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1998년 2월 나쉬디와 알자와히리가 발표한 「전선 선언」은 두 사건을 루이나군에 대한 공격의 모범으로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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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228=== 국제 반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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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252==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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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영랑호텔의 동관은 1997년 철거되었고, 호텔은 3년 넘게 문을 닫았다가 2001년 서관만으로 「시디벨아베스 그랜드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동관 자리에는 희생자 41명의 이름을 한국어, 아랍어, 루이나어로 새긴 추모벽이 세워졌다.
254* 영랑호텔의 동관은 1997년 철거되었고, 호텔은 3년 넘게 문을 닫았다가 2001년 서관만으로 힐튼 영랑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동관 자리에는 희생자 41명의 이름을 한국어, 아랍어, 루이나어로 새긴 추모벽이 세워졌다.
255255* 매년 4월 12일 오후 9시 47분 추모벽 앞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2001년까지는 루이나군과 유고랜드 정부가 따로 추모식을 열었으나, 2002년부터 합동 추모식으로 바뀌었다.
256256* 추모벽의 이름은 국적이나 가나다순이 아니라 사망 당시 있던 층의 순서대로 새겨져 있다. 지하 세탁실의 하다드와 1층 주방의 김순례가 맨 앞에, 4층의 루이나 장교들이 그 뒤에 온다. 국적별로 나누자는 루이나 측 제안을 호텔 직원 유족회가 거부한 결과다.
257257* 내부자 바크리의 가족은 지금도 그가 폭약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다. 2009년 유고랜드 인권 단체가 사후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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